지역연극 문화 지킴이
The cultural protector for the regional theater
통영로드스토리텔러
Tongyeong Road Story Teller
극단벅수골 공연연보
Theater Group Beoksugol Performance Yearboolk
1981-1985 (창립기)
1981년 3월 20일 극단벅수골은 창립단원 9명이 주축이 되어 창립선언문을 통해 선배 연극인의 후예임을 자각하고, 향토연극 중흥의 기수가 되어 건전한 작품을 통해 지역사회 정신문화 창달에 기여할 것을 다짐하며 출발을 알렸다.
1982-1983
1986-1990 (격동기)
극단벅수골의 창단 이후 급격히 쏟아낸 다작과 초청공연을 통한 연극 보급은 벅수골 단원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이 만든 산물이며, 특히 장현 대표는 학창시절 아역 배우로 출연하면서부터 연극의 꿈을 키워 왔으며, 선배, 선생들의 연극의 맥을 잇고자하는 치열한 연극정신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1986년 이후에 들어서면 소극장 개관에 따른 희열과 아픔, 극단대표의 죽음, 체제 정비, 몰려드는 관객, '시월연극제'개최 등등 희비가 엇갈리는 격동의 시간을 겪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연극열정을 불태우는 시기를 겪는다.
1991-1995 (성장기)
80년대 창단과 격동기를 거쳐 온 극단벅수골은 90년대 이후 활발한 소극장의 활용과 연극전업 단원의 증가로 말미암아 연극전문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창작 활동 또한 매우 활발히 전개된 시기를 맞이하며 이전 시기보다 대내외적으로 한층 성장하는 시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 이후 극단 벅수골의 작품 활동은 거의 장창석 연출가를 중심으로 하여 무대가 형상화 된다.
90년대 이후 통영연극에서 주목해야 할 사람을 장창석으로 본 김소정은 『한국현대연극100년』 <지역연극사-경남> 편에서 "장창석 연출가는 주로 서사극이나 부조리극 양식이 가미된 반사실주의적인 무대를 선호 하지만 카타르시스 연극의 정수로 보고 배우의 사실적인 연기와 플롯이 상승하는 작품을 추구 한다."고 하였다. 실제 연출가 장창석은 세인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보다는 비교적 다른 연출가들의 손길이 가지 않은 작품을 무대에 형상화 시켜내는데 그러한 작품계열이 대체적으로 반사실주의적 무대로 형상화 되어 나타난다.
1996-2000 (시련기)
이 시기에 들어서면 극단 40년사에 비춰 공연 횟수가 가장 적은 시기임을 알 수 있다. 90년대 초 왕성한 활동과 대외적 성과는 연극 전업단원을 양산했지만 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나름대로 더 나은 작업 공간을 찾으려 했으며, 연극을 겸업으로 하던 단원들은 전문 극단으로 방향을 돌리려는 극단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장창석 대표는 이 시기를 "창단 후 15년 동안을 뒤돌아보지 않고 바쁘게 달려오다 보니 단원들이 각자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되돌아본 시기가 아니었을까"라고 회고하였다. 또한 연극을 전업으로 하겠다던 단원들이 어느 정도 연극을 경험한 후 자신들의 연극에 대한 가치관의 갈등과 혼란을 서울이라는 문화 중심지에서 활동하거나 연극을 공부함으로서 극복해 보고자 했던 행보와 직장과 연극 사이에서 생활고 문제 때문에 전업을 삼지 못하는 단원들의 애로 등이 전문연극단체로 변모하려던 극단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청소년기의 성장통처럼 성장하기 위한 15살의 극단 앞에 또 다른 아픔과 인고의 시간이 통과의례처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도리어 벅수골의 그 다음을 위한 자양분이 되고 있었다는 것은 후일에 가서야 알게 된다.
2001-2005 (성숙기)
극단벅수골은 1990년대 후반의 시련기를 거치면서 통영시 유일의 극단으로서 지역 독창성과 전문성을 키워내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이전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전열을 가다듬으며 21세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는 97년 개관한 시민문화회관의 활용이 늘어나는 반면 벅수골 소극장에서의 공연은 줄어든다.
그리고 2001년은 극단벅수골 창단 20주년이 되는 해여서 더 특별히 새 출발의 의미를 보탤 수 있었으며, 특히나 2001년 19회째를 맞는 경남연극제가 통영시에서 개최된 것을 계기로 연극 활성화의 길을 모색하고 새로운 출발 의지를 견고히 하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 부터는 전문적 기획 작업으로 인해 문화예술정책으로 실시되는 지원사업의 주관단체로 선정되기 시작한다.
2006-2010 (도약기)
예술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국가적 정체성을 지키는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하였으며,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소리 높여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시점에서 벅수골은 연극 전문단체로서의 도약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하여 2006년 이후 극단이 가진 장점들을 살려 내기 시작한다. 그 옛날 방방곡곡을 순회하던 유랑극단처럼 배를 타고, 차를 타고 섬과 섬을 넘나드는 순회공연이 이어지고, 또한 한국 신연극의 요람지다운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통영소극장축제를 확대하여 '통영연극예술축제'로 전환 하는 등 연극의 대 사회적 역할을 실행해 나가며, 전문적인 기획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으로부터 우수공연예술단체로 선정되어 여러 사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전문극단으로 도약한다. 꾸준한 창작과 각고의 연극 활동을 통한 노력들이 결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벅수골 단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지난 2000년대 초부터 독창성과 전문화를 지향하며 꾸준한 창작과 각고의 연극 활동을 통한 노력들에 의한 소산이며, 특히 극단 전문기획자로 나선 제상아의 공이 컸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011-2015 (안정기)
21세기 문턱을 넘어 전문극단으로 도약해 온 극단 벅수골은 2011년 창단30년을 기점으로 작품창작과 교육프로그램 등 대체로 안정적인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게 되었다. 연극의 대사회적 역할을 위해 단원들의 분업도 이루어져 갔으며, 이는 경남도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회관 연합회 등의 각종 심의사업에 연속으로 선정되는 결과에 힘을 보탰다. 해외교류공연과 통영로드스토리텔링 창작사업,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등 다양한 활동이 재선정 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리고 지난 10여년간의 레퍼토리 작품의 창작을 기반으로 재공연과 순회공연을 매우 효율적으로 진행하여왔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오랜 순회공연을 접고 새로운 창작방안을 강구하게 되었으며, 이후부터는 지난 시간 점차 다져 온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설화와 문화, 역사를 희곡으로 창작, 공연하고, 교육프로그램에도 적용해 나갔다. 지역 설화와 문화를 소재로 희곡화 하는 작업은 장영석, 강수성 두 분의 극단 고문이 주로 맡았고, 연출은 장창석,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은 제상아 팀장을 중심으로 이규성, 이상철, 박승규, 정희경, 김지아 등이 맡았다. 또한 2011년엔 풍해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지난 30년간 극단벅수골의 발자취를 엮어 <극단벅수골 30년>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2016-2020
글로컬 커뮤니티(Glocal Community)를 꿈꾸며
극단벅수골 창단40년(2021)을 향해 가는 이 시기에는 지난 10여년간의 전국 섬들과 소외지역을 찾아 순회하던 공연을 2014년까지 마무리하고, 통영지역의 문화,역사,인물 등을 소재로 한 작품 개발과 지역문화재 공간을 활용한 통영로드스토리텔링 공연에 공을 들였다. 또한 가장 지역적인 콘텐츠와의 융합을 통한 레퍼토리 작품 창조와 이를 통한 러시아, 이탈리아 등 해외 단체와의 교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