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이
작,장영석 l 각색,김선율 l 연출,장창석
연출의도
순수한 백성들이 겪었어야 할 고초를 다시 생각하면서... 통영‘야소골’의 설화, 한센병환자가 물도랑에서 목욕을 하고 불치의 병이 나은 후 물이 말라버렸다는 이야기와 한자 지명인 야소곡(冶所谷)을 풀이하여 임진란 전후에 당포 수군 만호전’에 필요한 무기를 제작했던 대장간이 있었다는 지명유래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왜군들의 수탈과 횡포에 지친 그 시대의 민초들의 삶을 노래하여 저항의 몸부림과 자유를 쟁취하고자 한다. 왜구들의 침입은 신라시대 문무왕(文武王)의 유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호국용(護國龍)이 되어 왜적을 막겠으니 바다에 묻도록 하라’는 유언에 따라 경주 앞바다 대왕암(大王岩)에 수중릉(水中陵)을 만들었었다. 왜구들의 침입은 신라시대부터 있어왔고 이들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고려후기부터 점차 그 규모가 100척 이상 커져서, 경상, 전라, 충청, 경기의 연안에 까지 활동무대를 넓히며 때로는 황해도와 평안도까지 노략질을 했다. 급기야는 임진년에 일본은 군대를 이끌고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작품에 임하면서 나라 역사가 위기에 쳐했을 때, 순수한 백성들이 겪었어야 할 고초를 다시 생각하면서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성숙된 국민이 되는 것도 우리 스스로에 대한 가장 큰 투자일 것이다. 그리고 현시대에 우리들의 바람과 의지(意志)를 국민들의 옳은 힘을 갖고 당당하게 관철시키며 현 시대에 아픔과 잘못을 과감히 수정시킬 수 있는 국민적 힘을 그 옛 시절의 야소곡마을의 민초의 힘과 함께 작품에 녹여 놓았다.
작품줄거리
통영‘야소골’은 대장장이 마을로 대장장이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아주 뛰어나 조선의 왕에게도 인정을 받는 마을이었다. 이를 알게 된 왜군들이 야소골에 들이닥쳐 자신들을 위해 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마을의 여자를 한명씩 죽이겠다며 마을의 모든 여자들을 잡아가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고민에 빠졌다. 왜군들에게 무기를 상납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자신의 가족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왜군에게 협조를 해야 한다는 이장 어구양반의 설득에 사람들은 무기를 만들기로 결심하지만, 목숨이 다하더라도 대장장이의 정신을 버리면 안 된다는 산양댁의 말에 마을사람들은 또 다시 흔들린다. 그날 밤. 수상한 그림자가 마을에 나타나는데...
공연사진
Performance Gallery